생후 9~24개월 사이의 아기에게는 '분리불안'과 '자율성 욕구'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이 시기를 전문가들은 '재접근기(re-approachment)'라고 부르며, 아이의 정서 및 사회성 발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봅니다. 이 글에서는 재접근기의 개념, 아기들이 보이는 주요 행동 변화, 그리고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육아 팁을 단계별로 정리하여, 양육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재접근기란?
‘재접근기’(Re-approachment)는 미국의 정신분석가 마거릿 말러(Margaret Mahler)의 ‘심리적 출생 이론’에서 유래된 개념입니다. 말러에 따르면 아기는 생후 6~36개월까지 정서적으로 ‘심리적 독립’을 향해 나아가며, 이 과정에서 세 가지 큰 발달 단계를 겪습니다.
📌 심리적 분리-개별화 과정의 주요 단계
- 분화기(6~9개월): 아기가 엄마와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
- 연습기(9~15개월): 걷기 시작하며 세상을 탐색,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걸 즐김
- 재접근기(15~24개월): 자율성과 독립을 시도하면서도 다시 엄마에게 다가감
재접근기는 아이가 혼자서 해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다시 부모에게 정서적 안전을 확인하려는 시기입니다.
2. 재접근기 아기의 주요 특징
✅ 감정 기복이 심해짐
- 방금 전까지 스스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를 찾으며 운다
- “혼자 할래!” 하던 아이가 금세 “도와줘!” 하며 다시 매달린다
▶ 이유: 독립을 원하지만 아직 완전히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고집과 “싫어”가 급증
- 사소한 것(양말 색, 컵 종류 등)에 대해 집착
- 옷 입기, 씻기, 밥 먹기 등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거부 행동
▶ 이유: 자율성 발달과 맞물려 자신의 선택을 주장하는 시기입니다.
✅ 분리불안의 재등장
- 놀이 중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금방 울음
- 잠들 때 엄마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하거나 다시 깬다
▶ 이유: 외부 세계에 대한 흥미와 동시에 부모의 정서적 안정감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 흉내 내기와 모방 행동 증가
- 엄마 아빠의 말투, 행동을 그대로 따라함
- 전화하는 척, 밥 먹는 척, 청소하는 흉내 등 ‘역할 놀이’ 시작
▶ 이유: 사회성 발달의 초기 단계이며,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며 ‘자기’를 확장해 나가는 중입니다.
✅ ‘내 것’ 집착과 또래와의 갈등
- 장난감을 다른 아이가 만지면 분노
- 함께 놀기보다는 ‘평행놀이’를 선호
▶ 이유: 자아 개념과 소유 개념은 생겼지만 타인의 입장은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입니다.
3.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재접근기 육아팁
✅ 감정을 ‘대신 말해주기’
아이가 울거나 짜증 낼 때, “지금 속상했구나”, “엄마랑 더 있고 싶었지?”라고 말로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세요.
▶ 효과: 말로 감정을 인식하는 능력이 자라면 행동 표현 빈도가 줄어듭니다.
✅ 자율성 보장 + 선택지 제공
“이거 입어!” 대신 “노란 옷이 좋을까? 파란 옷이 좋을까?”처럼 제한된 선택지를 주세요.
▶ 효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통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 거부 행동엔 일관성 있게 대응
“씻기 싫구나. 그래도 우리 씻고 나면 좋아하는 책 읽자.”처럼 감정은 공감하되 규칙은 유지합니다.
▶ 효과: 일관된 환경에서 예측 가능성을 경험하며 안정감을 느낍니다.
✅ 재접근 행동에는 신뢰로 반응
아이가 “엄마 안아줘!”라며 달려오면 잠시 멈추고 안아주세요.
▶ 효과: 정서적 안정감을 확보한 아이는 다시 혼자 놀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또래 갈등 중재는 간접적으로
“이건 친구가 쓰고 있었네. 우리 기다려보자.”처럼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제안 중심으로 말해 주세요.
▶ 효과: 협동과 양보는 아직 어렵지만 조절의 기초가 됩니다.
결론: 재접근기는 혼란이 아닌 성장의 증거입니다
많은 부모가 재접근기 아이의 고집, 떼쓰기, 감정 기복을 문제로 느끼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세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려 애쓰는 자아 형성의 핵심 시기입니다.
이때 부모가 보여주는 신뢰, 일관성, 공감은 아이에게 심리적 안전기반(Secure base)을 제공하며, 장기적으로 자존감, 감정 조절력, 사회성의 토대가 됩니다.
아기의 재접근 행동은 “내가 널 신뢰하고 있어”, “그래도 아직 네 도움이 필요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메시지에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입니다.